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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쾌 마운틴, 2024

 

· 강동구, 서울, 대한민국

· D 빌딩 리모델링

 

Habitable Mountain, 2024

 

· Gangdong-gu, Seoul, Korea

· D Building Remod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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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말이 있다.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하는 현상을 뜻하는 로봇공학 분야의 이론이다. ‘골짜기’라는 표현은 그래프의 x축을 인간과의 유사성(Human Likeness), y축을 호감도(Familiarity)로 놓았을 때 인간과 근접한 구간에서 갑자기 호감도가 확 떨어지며 마치 골짜기처럼 보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인간을 어설프게 닮은 것을 아예 닮지 않은 것보다 더 싫어한다는 것이다.


  건축과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표현이 다시 떠오른 건 한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에서였다. 오래된 상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싶다며 나를 찾아온 그는 누구보다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수십 장에 달하는 PPT에 자신의 생각들을 빼곡히 적어온 것에서 먼저 놀랐고, 예시로 담긴 건축 사진 대부분이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클라이언트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아이디어를 ‘건축적 어휘’로 변환해 낸 것이다. 나는 처음 겪어보는 새로운 방식의 대화에 당황스러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서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건축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멋있었다. 클라이언트가 사용한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프로그램은 원하는 건축의 느낌을 명령어 형태로 입력하면 그럴듯한 CG로 투시도나 조감도를 만들어 준다. 건축 외에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한계점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손가락이다. 인공지능은 몸이나 얼굴은 주름 하나까지 완벽하게 그려냈지만 이상하리만큼 손가락의 개수나 마디의 형태를 자주 틀렸다. 때문에 그럴듯해 보이는 그림도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골짜기’를 통해 인공지능이 그렸는지 구별해 낼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보여준 건축 이미지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어 기둥이 생략되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형태나 층고가 부족하게 그려져 실제 구현되기 어려운 공간 등의 문제였다. 비현실적으로 얇은 슬래브나 가는 멀리언으로 인해 실제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자잘한 모순들이 모여 완성된 이미지는 얼핏 보면 꽤 그럴듯해 보여도 분명 ‘불쾌한 골짜기’에 가까웠다. 내 입장에선 못내 불완전한 대화였지만 클라이언트는 인공지능 덕분에 꽤 만족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 듯 보였다. 이제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실현 가능한 건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대유쾌 마운틴(Habitable Mountain)’은 마침내 인간의 마음에 드는 데 성공한 인공지능 이미지들을 통칭하는 네티즌들의 신조어다. 호감도 그래프가 바닥을 치는 골짜기를 넘어 마침내 산꼭대기에 다른 상황을 한 유머 사이트에서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 유명세를 탔다. 몇몇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미 인공지능이 기술적으로 특이점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제 불쾌함을 넘어 인간의 호감을 얻는 것, 즉 ‘대유쾌 마운틴’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인공지능에게 주어진 최후의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클라이언트는 최종 미팅에서 나의 설계안에 크게 만족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무수한 이미지들을 제치고 마침내 인간의 호감을 얻어낸 작은 승리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건물은 막 공사를 앞두고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대유쾌 마운틴’이라고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 이규빈,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서', 2024. 9, 서울건축사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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